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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몰입이란 이런 것, 쿠푸왕의 피라미드 VR 전시

 

지난 3월, 흥미로운 전시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VR을 활용한 몰입형 탐험 전시, 쿠푸왕의 피라미드였죠.

 

‘기존 VR 경험의 제약을 파격적으로 넘어서는 몰입감 있는 체험’, ‘300평에 이르는 공간을 자유롭게 탐험’, ‘문화와 오락을 넘나드는 새로운 형식’. 그동안 VR을 활용한 게임, 혹은 간단한 전시만 경험했기에 해당 전시의 소개 문구가 갑자기 확 끌리더군요.

 

그래서 직접 예매 후 전시가 열리는 용산 전쟁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약 45분가량 진행된 피라미드 탐험은 그야말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유익하기까지 합니다. 혼자 와서 끝나고 전시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다는 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죠.

 

 

프랑스 엑스큐리오가 제작한 쿠푸왕의 피라미드 전시는 2022년 파리에서 첫 공개 됐습니다. 가상 현실을 통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기자의 대피라미드 공간을 탐험할 수 있는 체험형 전시로, 이번 서울 전시는 바이브 포커스3를 착용한 뒤 직접 걸어 다니며 거대한 피라미드와 그 이상을 탐험할 수 있습니다.

 

전시는 한 팀이 출발하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다음 팀이 출발하는 방식이었는데, 원활한 체험을 위해 타임 당 인원이 정해져 있습니다. 제가 참여한 시간대는 평일 오전이었음에도 이미 앞에 여러 팀이 출발, 뒤에도 연이어 다른 팀들이 출발할 정도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찾았습니다.

 

처음 기기를 착용하고 나면, 튜토리얼 개념의 안내가 흘러나옵니다. 물론 상호작용을 하거나 조작하는 요소가 없기에, 어려울 건 없었습니다. 어느 공간까지 이동해야하고, 혹시나 길을 잃으면 어떻게 진행 상황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뭐 이 정도의 안내입니다.

 

그리고 화면이 암전되고, 눈앞이 밝아지면 우리는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해 있죠. 그렇게 본격적인 탐험이 시작됩니다. 놀라운 건 눈앞의 그 거대한 피라미드와 카이로의 모습입니다. 비록 스탠드얼론 VR이라 매우 선명한 화질은 아니지만, 시선이 닿는 모든 곳, 360도 모든 방향의 전경이 잘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놀라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고요.

 

 

전시는 단순히 피라미드를 걸어다니며 설명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45분의 탐험을 아우르는 스토리가 존재하죠. 평범하게 가이드 모나와 함께 기자의 대피라미드,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관람하러 들어간 뒤, 이집트의 신 바스테트를 만나 시공간을 넘으며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이 스토리라인을 따라 자연스럽게 피라미드의 건설 방식부터 그 내부의 공간,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풍경, 피라미드 및 쿠푸왕과 관련된 내용, 마지막으로 미라를 만드는 방식과 그 이후의 이야기 등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압도적으로 구현된 가상 공간은 실제 우리가 이집트와 피라미드 내부에 있는 듯 몰입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죠.

 

이 경험이 놀라울 수 있었던 건, 300평이나 되는 넓은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자유로운 이동 때문입니다. 전시는 HTC 바이브의 위치 기반 엔터테인먼트, LBE 기술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전시가 진행되는 거대한 공간에서 다수의 관람객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서로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죠.

 

LBE 기술은 사용자의 움직임을 보다 자연스럽게 반영하며, VR 공간 내에서 실제 탐험하는 듯한 경험을 극대화합니다. 관람객은 단순히 가상의 화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공간에서 이동하며 탐험하고, 다른 관람객들과 함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죠. 저는 혼자 관람했지만, 최대 6명이 한팀이 되어 탐험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여러 팀이 해당 공간에서 동시에 체험을 진행하기에 동선이 어느 정도 제한되어있긴 합니다. 탐험 역시 매번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이동 후 특정 공간을 보고, 또 이동하고 관람하고, 그러다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야 할 시 암전 후 장면이 변환되는 방식입니다. 즉, 엄청나게 많은 이동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한이 크게 거슬리지는 않습니다. 실제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이를 납득시키기 때문이죠. 좁은 통로나 사각의 방, 피라미드 꼭대기, 나일 강 위를 떠 있는 배 등 특정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는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스토리를 진행하게 됩니다.

 

우리는 쿠푸왕의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그가 누워있는 관 안을 직접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좀 더 멀리서 신관들의 제를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360도로 펼쳐진 기자 평야의 파노라마 뷰를 직접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볼 수도 있고요.

 

 

그리고 관람객이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을만한 구간은 직접 하나하나 이동하며 주변을 살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연출은 많은 이동 없이도 상황에 크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죠. 실제로 제 앞 팀의 경우 본격적인 스토리가 진행되는 구간부터 마지막까지 일행 두 명이 계속해서 탄성을 터트리더군요.

 

모든 체험이 끝난 뒤 기념품 샵에서 창 너머로 체험 공간을 일부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생각보다도 더 넓은 공간에 놀라긴 했습니다. 그동안 접해온 대부분의 VR 콘텐츠가 한정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게임 혹은 체험 정도였기에 이렇게까지 거대한 가상 공간을 경험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놀라웠을 수도 있어요.

 

인상깊었던 건, 전시 자체의 완성도입니다. 매우 사실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가상 공간, 45분을 꽉 채운 스토리 라인, 그리고 섬세한 고증을 거친 피라미드에 대한 이야기들이 합쳐져 풍부하게 하나의 콘텐츠를 체험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들었거든요.

 

VR 게임처럼 직접 뭔가를 조작하거나, 상호작용이 있다거나, 스릴 넘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편안하게 보고 듣고 걷는 것만으로도 ‘탐험’이라는 이 전시의 목적을 확실히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체험이 끝난 뒤 만난 다른 관람객 역시 “VR을 경험한 것 자체가 처음인데, 진짜 이집트를 갔다 온 것 같아서 놀라웠다”고 할 정도로 만족감을 표했고요.

 

 

물론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가장 아쉬운 건 다른 사람들과의 마주침입니다. 체험 중 앞이나 뒷팀과 가까워질 경우, 투명한 마네킹과 같은 실루엣이 보이게 되는데요. 타임 당 인원이 정해져 있지만 아무래도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다 보니 연출이 길어지는 구간에서 다른 팀들과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실루엣이 보일 정도로 서로 근접해 있을 경우에는 체험 속 음향을 뚫고 다른 팀들의 목소리도 환하게 들리다 보니 몰입감이 확 깨지게 되더군요. 사람과 부딪힐까 봐 움직임에도 제약이 생기고요. 애초에 출발 텀을 좀 더 길게 두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VR 기기를 처음 써보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가 조금 부족한 듯싶었습니다. 저 역시 초점을 맞추기 위해 기기 자체를 조금씩 이동시키라는 말만 들었을 뿐, 가운데 다이얼을 조정하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 300평의 매우 넓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체험

 

개인적으로 이런 체험이 VR이 줄 수 있는 좋은 경험의 예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단순히 가상 현실을 사실적인 화면으로 제공하는 게 끝이 아니라, 사진이나 책으로, 그냥 영상으로만 보던 문화적인 공간을 직접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 말이죠. 그것도 흥미로운 연출, 그리고 스토리와 함께요.

 

덕분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모나의 마지막 인사가 서운할 정도로, 출구 표시로 걸어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깊이 몰입해서 재미있게 전시를 즐겼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전시가 단순히 재미만 있는 건 아닙니다. 하버드대 이집트학 교수 피터 데 마뉴엘리안의 철저한 고증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덕분에 흥미로운 탐험 중 마주하는 모든 정보는 건축적, 과학적, 역사적으로 검증된 내용이라고 합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전시는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9월 28일까지 진행됩니다. 시간당 인원은 정해져 있으며, 티켓은 인터넷을 비롯해 현장에서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웹진 인벤 김수진 기자
202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