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더 대중적이고, 더 방대해지는 AAA.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는 돈과 양이라는 AAA의 한계를 넘어, 창의성과 열정이 여전히 가치가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방대한 인력과 자본이 만드는 AAA 게임은 오래도록 게임 시장의 기술 성장과 그 화려함을 상징해왔다. 게임 개발에는 블록버스터 영화 이상의 제작비와 개발자가 모이고, 그 개발비만큼의 마케팅 역시 더해진다. 그렇기에 실패에 대한 부담은 크고, 도전에는 인색해진다.
그리고 이건 마치 절대 반론할 수 없는 불변의 공식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슈퍼 패미컴 시절의 게임은 5~10명 정도에 불과했고 대형 타이틀이나 10명 이상의 개발자가 작업에 참여했다. 인기 프랜차이즈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였고,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꼽히는 '파이널 판타지6' 정도가 정식 스태프 30여 명, 최대 50~60명 정도가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그래픽 기술의 발전, 게임에 투입되어야 하는 당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드넓은 필드를 가득 채울 게임 콘텐츠, 그것들이 어긋나지 않게 만드는 로직, 또 그걸 보고 듣도록 만드는 그래픽과 사운드까지. 양과 질 모두 크게 올랐고, 이는 곧 게임의 개발비 인상이 불가피한 불가항력의 이유가 됐다. 만들 게 많으니, 돈도, 사람도 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33 원정대는 게임의 완성도와 재미가 투자의 양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33 원정대는 단순히 소규모 게임을 지향하는 건 아니다. 기존 RPG 장르의 고전들을 존경하고 오마주하는걸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색을 여러 방향에서 훌륭하게 해냈다. 나아가 그 창의성의 발현 아래 빠져들 수 있는 세계관과 그걸 시각적으로 구현한 비주얼리티는 일관된 매력을 전한다.
그렇게 게임은 서구권에서는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킬 거라는 '엘더 스크롤4: 오블리비언 리마스터' 이상의 관심을 받고 있다. 발매일부터 Xbox 게임 패스에 입점됐지만, 출시 3일 만에 100만 장이 팔렸다.
이걸 개발 팀에 이름을 올린 33명의 개발자(와 행복 매니저 역의 강아지 한 마리)가 실현해냈다. 물론 회사의 규모를 생각해 외주 제작, 퍼블리셔의 도움 등이 있었다. 물론 일관된 퀄리티와 비전을 위해 외부 리소스 활용에 인색한 곳도 있다. 달리 말하면 개발사 샌드폴은 게임의 외부 개발 자원까지도 게임의 완성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관리할 수 있는 재능있는 인재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즐기는 데에는 한국 정가로 54,800원, 50달러가 채 들지 않는다. 풀프라이스 가격 80달러를 바라보는 시대에, 현시점 최고의 평가를 받는 게임은 50달러에 팔아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이 섰던 셈이다. AAA 게임의 개발비 증폭으로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대형 스튜디오, 퍼블리셔의 이야기가 꼭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게 입증되는 셈이다.
물론 클레르 옵스퀴르가 대형 게임의 특징을 부정하지 않는 AA급 게임이지만, 풀하나까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디테일이나 방대한 오픈 월드를 가득 채운 콘텐츠가 널려있는 건 아니다. 반대로 오늘날 대형 게임사가 AAA 게임을 오픈 월드로 재편하고, 팬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에 도달하지 않는 게임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가 사실이 아닐 수 있음 역시 보여줬다.
만족할 수 있는 외형과 그 안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완성도의 AA 게임. 클레르 옵스퀴르가 보여준 가능성은 규모의 성장에서 게임 시장의 종말을 예견하는 이들에 경종을 울린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AA급 게임들이 도전과 창의성으로 팬들 앞에 설지, 다시 IP 후속작과 리메이크라는 안전한 길로 돌아설지. 업계의 응답이 남아있다.
웹진 인벤 강승진 기자
2025-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