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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기대치 & 그 이상의 재미, '아크 레이더스'

 

'아크 레이더스'는 기대주다.

 

그림이 너무 좋다. 모바일 강점기를 지나 스팀이라는 활주로를 통해 펼쳐진 글로벌 런칭의 시대. 묵직한 고향의 맛보다 온 세상 누구나 맛있게 먹을 보편적 식단을 요구하는 시장 흐름에 따라 몇몇 개발사는 발빠른 행보를 보였고, 괜찮은 성과를 거두며 "역시 한국에도 이런 게임이 나와야 합니다"라는 긍정적인 리액션을 이끌어냈다.

 

넥슨은 한 술 더 떴다. 자체 개발도 이어가면서 동시에 스웨덴의 개발사 하나를 통째로 가져왔다. 북유럽에는 나름 알짜배기 게임사들이 많고, 개발력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수준이니, 몇 년 전 엠바크 스튜디오를 자회사로 편입한다는 뉴스가 떴을 때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엠바크 스튜디오가 '진짜 작품'을 만들 시간을 벌기 위해 슬쩍 꺼낸 샘플 메뉴인 '더 파이널스'가 생각보다 쏠쏠한 성적까지 거둬 버리니, 이제 세간의 이목은 엠바크 스튜디오가 갈고닦는 진짜 주인공, '아크 레이더스'에 집중되었다. 레트로 감성과 신스팝이 어우러진 트레일러, 거대한 기계와 협동까지. 뭐하나 기대치를 깎아먹는게 없다.

 

그리고, 조만간 시작될 CBT에 앞서 미디어를 대상으로 제한된 1차 CBT가 진행되었다. 단 3일, 하루 3시간씩 총 9시간만 열리는 짧은 테스트. '아크 레이더스'는 우리의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살펴볼 시간이다.

 

 

 

익스트랙션은 너무 무서워

슈퍼 겁쟁이들을 위한 익스트랙션 게임

 

 

고백하자면, 기자는 익스트랙션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익스트랙션 장르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에서 매운 맛을 너무 제대로 봤기 때문인데, 요약하면 거지로 시작해서 이제 살림좀 피나 싶을 때마다 다시 거지가 되었다. 타르코프에는 너무나 많은 고인물들이 도사렸고, 누구도 내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바로 이전에 유행한 '배틀로얄'에서 한 단계 선택의 레이어를 더한 것이 익스트랙션 장르다. 배틀로얄 장르에서 게이머는 '어떻게 싸울지'를 결정해야 한다. 최후의 한 팀이 승리를 거머쥔다는 기본 룰 상, 싸움을 회피할 수는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싸우냐를 선택해야 하는 게임이 배틀로얄이다.

 

▲ 솔직히 게임 시작과 동시에 손에 땀난다

 

반면, 익스트랙션은 정 무서우면 싸움을 회피해도 문제가 없다. 디자인 상으로는, 배틀로얄보다 부담이 덜해야 마땅하다. 문제는, 배틀로얄은 져도 그만이고 매 판 소프트 리셋이 이뤄진다면, 이 장르는 죽는 순간 가지고 나간 장비가 죄다 증발해 버리는 엄청난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싸우냐 마느냐'의 선택 한 번에 너무나 많은 것이 걸린다. 시궁쥐마냥 쓰레기만 줍고 다닐 수도 없고. 분쟁 지역에서 숨 한번 잘못 쉬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그래서 나는 익스트랙션이 너무 무섭다. 때문에 잔뜩 겁먹은 슈퍼 겁쟁이 상태로 투입된 첫 전장. 첫 판을 마무리하고 탈출한 감상은 이랬다.

 

"뭐지? 생각보다 할 만 한데?"

 

몇몇 익스트랙션 게임이 그렇듯, '아크 레이더스'의 전장도 세션제가 아니다. 그냥 열려 있는 전장에 플레이어가 투입되는 형태이며, 사실상 '볼 일 보고 나면 떠나는' 게임이다. 반드시 누군가와 싸워야 할 필요도 없고, 최후의 탈출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할 필요도 없다.

 

▲ 익스트랙션 게임에서 가장 쫄리는 순간, 집 가는 버튼 누를 때

 

실제로 플레이 중 적대 유저를 만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한 판에 두세 번 정도 조우하는 정도. 그마저도 끝장날 때까지 싸우는 경우보다는 적당히 견제를 주고받다가 갈 길 가거나, 서로 싸워봐야 손해라는 걸 인지하고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된다. 시스템적으로 싸움을 강제하는 형태가 아닌, 필요에 따라 싸움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보니 더 그렇다.

 

필드에 드랍되는 여러 재료들을 잔뜩 들고 있는, 이른바 '돼지'상태라면 더더욱 싸움을 회피하게 된다. 어서 탈출해서 창고에 아이템 가득 쟁여놔야 하는데 어차피 더 들고 가지도 못할 상대 아이템을 욕심낼 이유가 없으니까.

 

▲ 그렇다고 마주쳤는데도 안 싸운다는 건 아니고

 

때문에, 아크 레이더스의 기본적인 게임 흐름은 시작 위치에서 적당히 동선을 잡아 중간에 마주치는 '아크'(기계 NPC들)들을 처리하며 온갖 재료들을 파밍하고, 가까운 탈출 지점을 찾아 탈출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당연히 매번 성공할 수는 없고, 10판 정도 하면 한 판 정도는 샌드위치에 당하거나, 작정한 매복에 걸려 죽기도 하는데, 미리 재료들만 잘 쟁여놨다면 잃어버린 물자의 복구도 어렵지 않아 큰 부담이 없다. 무료 로드아웃이 있기 때문에 정 무서우면 법인카드 긁는 마음으로 무료 로드아웃을 선택해도 그만이다.

 

플레이를 반복할수록, 여러모로 첫 각오(?)와는 달리 부담없는 게임들이 이어졌고, 내 아지트도 점점 성장해 가는게 보였다. 익스트랙션인 건 맞지만 경쟁의 압력과 부담은 상당히 빠진 느낌. 혼자 돌아다니는 건 여전히 다소 부담되긴 하지만, 그마저도 은엄폐 위주로 조심스럽게 플레이하면 딱히 어렵지는 않은 수준이었다.

 

▲ 스킬 시스템도 존재하기에 어쨌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강하다

 

 

불편함도, 단순함도 없는

딱 즐길 만한 복잡함을 유지한 디자인

 

콘텐츠 면으로 보면, 콘텐츠의 순환 구조는 상당히 크면서도, 간단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플레이어는 자기만의 아지트를 지니게 되고, 여기서 대부분의 장비와 물자들을 생산하게 되는데, 장비 생산이나 아지트 확장에 필요한 재료들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산업 단지', '주거 단지', '의료 단지' 등 각 구획이 구분되어 있고, 해당 구역을 뒤지다 보면 랜덤으로 재료를 얻게 되는 형태다.

 

반면 플레이어가 피로를 느낄 수 있는 시스템들은 대부분 빠져 있는데, 타르코프에서 볼 수 있었던 부위별 부상이나 허기 시스템이 그렇다. 팔다리 부러지는 건 예사에 중증외상센터 단골이 될 정도로 부상을 달고 다니던 타르코프와 달리 아크 레이더스는 그냥 쉴드와 체력 게이지만 있을 뿐이다.

 

▲ 아이템마다 얻을 수 있는 곳이 정해져 있다

 

▲ 그렇게 모은 재료들은 작업대 업그레이드나 장비 제작에 활용

 

간소화된 시스템으로 부족해진 변수는 '아크'들이 채우는데, 이 아크들도 각각 고유한 재료를 드랍하며, 몇몇 재료는 업그레이드에 반드시 활용되기 때문에 아크들과의 분쟁은 필수적이다. 아크마다 추진기를 먼저 처리해야 하거나, 무기를 무력화해야 하는 등 공략법도 정해져 있다 보니 게임을 알수록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게임을 반복할수록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걸 느낄 수도 있다. 대체 이게 뭐라고...

 

재료와 파밍 아이템은 꽤 복잡한 구조로 짜여 있는데, 상위 재료는 그 자리에서 분해해 하위 재료로 가공할 수 있으며,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제작과 업그레이드에는 다수의 하위 재료와 몇 개의 상위 재료가 필요하므로, 필요량을 늘 생각해 둬야 하며, 가방이 가득 찼을 때 급할 경우 큰 쓸모가 없는 상위 아이템을 분해해 쌓는 식으로 더 많은 파밍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가방 내 동일 아이템은 스택(쌓아두기)이 가능하긴 하지만, 총 무게 제한이 존재하기에 무한정 파밍은 불가능하다.

 

▲ 아크와의 전투는 상당히 빈번하며, 실제로 필요한 전투다

 

'전투'는 다른 제반 시스템에 비하면 가장 심플한 부분. 아크 레이더스의 전투 템포는 상당히 긴 편인데, TTK가 길다거나, 레이더(플레이어)의 체력이 많다기보단 총기의 기본 성능이 무척 저열하다. 재장전 속도도 느리고, 조준점이 잡히는데도 딜레이가 있으며, 장탄량도 보잘 것 없어 한 탄창 안에 전투를 끝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모듈 부착과 업그레이드를 진행하면 점점 좋아지다가 여느 슈터와 비슷한 감각까지 올라오긴 하지만, 순식간에 결판이 나는 게임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느긋한 템포로 이뤄진다. 중간에 몇 번씩 숨고 싸우고를 반복하는 느낌. 부착물 없는 1티어 총기로만 싸우는 배틀그라운드와 비슷한 느낌이라 해야 할까.

 

여기에 방점을 찍어주는게 '스테이지 변조'다. 조건이 갖춰지면 몇몇 전장은 '야간 습격'이나 거대 아크가 등장하는 '추출기'가 활성화되는데, 이때는 평소와 다른 환경의 전장이 마련된다. 건물만한 아크가 돌아다니며 미사일을 퍼부어 길 가던 다른 유저들과 임시 동맹을 맺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고, 빛 한 점 없는 야간에 손전등 불빛에 의존해 출전하기도 해야 한다.

 

▲ 야간 습격 아시는구나! 진 짜 안 보 입 니 다

 

이 변조들은 사실 대단히 큰 시스템의 축이라 할 수는 없지만, 자칫 반복적인 콘텐츠 순환의 과정에서 질릴 수 있는 플레이를 한 번씩 틀어줌으로서 환기의 기회를 만들어준다. 게임플레이에 강제되는 무언가가 없는 만큼 동기부여가 어려운 점이 아크 레이더스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떻게든 질릴 만한 부분을 줄이고자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 처음 봤을 땐 버그인 줄 알았다

 

 

아크 레이더스의 '킥'

그냥 게임을 잘 만든 게 장점인 게임

 

 

물론, 이런 건 다 중요하지 않다. 위에서 말한 모든 것들은 결국 '게임이 재미있다'라는 전제 하에 빛을 보는 요소들이니까. 아크 레이더스는 시스템 면에서 기존 동종장르 게임들, 그리고 타 장르 게임들에서 볼 수 있었던 여러 좋은 부분들을 가져다 융합했지만, 결코 '킥'이라 할 만한, 고유하면서도 독특한 무언가를 보여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매우 분명하게 아크 레이더스는 상당히 잘 만든, 그리고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인데, 그 이유는 아크 레이더스의 '킥'이 시스템 골조와는 다른 부분, 사람으로 치면 근육과 피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엠바크 스튜디오는 DICE 출신의 개발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고, 그 만한 개발력을 게임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더 파이널스'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는데, 더 파이널스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애니메이션과 슈터로서의 마감새다. 캐릭터가 달리는 애니메이션과 방향을 틀 때 무게중심의 이동, 엎드리거나 미끄러지는 모습 등 게임 내 캐릭터의 움직임이 전반적으로 무척 깔끔하고 잘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DICE의 대표작인 '배틀필드' 시리즈부터 꾸준히 보여진 이들의 강점이다.

 

▲ 전력질주를 시작할 때 무게 중심의 이동과 시선에 따른 움직임까지 거를 타선이 없다

 

그리고, 아크 레이더스에도 이 개발력이 그대로 녹아 있다.

 

단순히 캐릭터의 애니메이션과 조작감을 떠나, 그냥 게임 자체를 잘 만들었다는 감상을 게임 내내 받을 수 있다. 배경의 색감과 톤부터, 조형, 광원, 그리고 VRAM을 많이 먹기는 하지만, VRAM 제한선 안에서는 안정적인 프레임레이트까지.

 

▲ 그냥 게임 자체를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 물씬 난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찾으면 분명 있다. 전장에서의 플레이는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지만, 로비는 너무 단순하고 볼품없는 느낌도 있고, 재료 아이템도 비슷비슷하게 생긴게 너무 많다 보니 직관적으로 무엇을 가져가야 할 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무기 이름도 죄다 처음보는 고유명사들로 이뤄져 있어 어떤 무기가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없고, 디자인조차 쇠파이프를 적당히 구부려 만든 모습이기에 겉모습을 봐도 무기의 특징을 파악하기 어렵다.

 

▲ 솔직히 로비 화면을 이거로 때워버린 건 좀 아쉽지만

 

아직 출시되기 전이니 감수할 수 있는 단점들이지만, 완벽한 게임은 아니라는 뜻. 하지만, 거슬릴지언정 이 단점들이 게임의 재미를 깎아먹진 않는다. 누구나 쉽게 플레이할 수 있고, 부담 없이 뛰어들 수 있는 익스트랙션. 그런데 높은 완성도를 양껏 끼얹은.

 

'아크 레이더스'의 첫 인상은 이렇다. 정식 서비스 이후 할 거냐고 묻는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시작은 할 거라고 답할 수 있는 게임이 '아크 레이더스'다.

 

▲ 출시되면 난 할 것 같다

웹진 인벤 인벤팀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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