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 시장의 K-판타지가 조선시대에 집중된 가운데, 대학 동아리에서 시작해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길드스튜디오는 다른 길을 택했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천 년 전 신라의 원화 이야기다. 길드스튜디오의 신작 '남모'는 화랑의 전신이었던 원화 제도의 초대 지도자 남모와 준정의 비극적인 대립을 다크 판타지로 재해석한 게임이다.
4개월이라는 짧은 개발 기간에도 플레이엑스포에서 큰 주목을 받은 '남모'는 경주 현지답사를 통해 발굴한 3천여 장의 자료와 탱화, 지옥도에서 영감을 받은 독특한 비주얼로 눈길을 끈다. "언젠가는 다크 판타지 명가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이들이 어떻게 한국적 소재를 다크 판타지 문법과 접목시켰는지, 그리고 조선이 아닌 신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Q. 먼저 길드스튜디오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 길드스튜디오는 대학 동아리로 시작한 스타트업 게임사다. 처음에는 그냥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학부생이면서 게임을 만든다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더라. 제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는 제대로 만들자는 생각에 스타트업으로 창업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는 서울경제진흥원에서 개발 중이며, 법인을 설립한 지는 1년 정도 지났다. 팀원은 기획 두 명, 아트 두 명, 개발 두 명, 사운드 한 명 총 7명이며, 각자의 파트 외적으로도 서로 도와주는 식으로 해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Q. '남모'의 퀄리티가 상당하던데 언제부터 개발한 건가.
= 작년 6월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본격적인 개발은 올해 1월부터 했다. 실제로는 4개월 정도밖에 안 됐다고 할 수 있다.
Q. 4개월밖에 안 됐는데 퀄리티가 상당히 좋은 것 같다.
= 그렇게 봐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아트의 경우 전작인 레벨라티오 때도 그랬지만, 우리의 강점인 면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냥 우리가 잘하니 '남모'도 잘 나왔다거나 그런 의미는 아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다크 판타지라는 콘셉트의 경우 서양을 배경으로 하는 건 많지 않나. 그런데 동양, 그중에서도 한국적인 건 거의 없어서 우리도 직접 발로 뛰어서 자료를 찾아야 했다.
그 일환으로 1박 2일로 경주에 탐사를 가기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자료로 쓸만한 것들이 엄청나더라. 나중에 보니 사진이 3천 장이 넘을 정도였다. 흥미로웠던 건 단순히 자료가 많은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다크 판타지에 어울리는 그런 분위기의 유물도 제법 있었다는 점이다. 탱화 같은 경우 어떤 면에서는 그로테스크하고 어두운 그런 부분이 엿보이기도 했는데 그런 사진 자료들이 '남모'의 테마를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Q. 어두운 분위기의 유물이라니, 어떤 건지 알려줄 수 있나.
= 굳이 하나를 언급하기 보다는 절에서 볼 수 있는 지옥도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Q. 레벨라티오도 제법 어두운 세계관이었는데 '남모' 역시 다크 판타지를 콘셉트로 하고 있다. 의도한 부분인가.
= 의도한 부분이다. 우리의 목표라고 할 수도 있는데 언젠가는 다크 판타지 명가가 되는 게 우리의 목표다. 그래서 전작도 그렇고 '남모'도 다크 판타지를 콘셉트로 삼았다. 여기에 한국을 배경으로 한 다크 판타지 콘셉트의 게임이 거의 없다는 점 역시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다. 인왕이나 와룡처럼 일본이나 중국 역사를 기반으로 한 다크 판타지 게임은 있는데 한국은 없지 않나.
한편으로는 아예 그런 쪽으로 니즈가 없는 것도 아니다. 킹덤이나 파묘를 보면 한국은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지 않았나. 이건 분명 그러한 니즈가 있다는 얘기로 니즈가 있는데 게임으로는 없으니 그렇다면 우리가 그걸 살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남모'를 개발하게 됐다.
Q. '남모' 대해서 자세한 설명 부탁한다. 먼저 남모가 뭔가.
= 남모에 대해 설명하자면 먼저 원화라는 제도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신라의 화랑에 대해서는 아마 다들 알 텐데 원화는 그 전신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원화의 초대 지도자가 바로 남모와 준정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둘이 결국 시기 질투에서 공멸한 거로 아는데 이걸 보면서 뭔가 우리만의 색(다크 판타지)으로 각색해서 살리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모는 원화의 지도자였던 그 남모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인데 우리 게임에서는 실제 역사 속 남모와 준정의 대립을 각색해서 준정의 배신으로 두 눈을 잃은 남모가 자신을 배신한 이유를 찾는 여정을 담았다.
Q. 실제 역사를 각색한 다크 판타지라는 설정이 여러모로 흥미롭다. 그런데 삼국시대, 그것도 신라를 배경으로 한 이유가 궁금하다. 요즘은 조선을 모티브로 삼는 게 많지 않나.
= 우리는 정반대였다. 역사를 기반으로 하더라도 조선은 피하자고 생각했다. 가장 큰 이유는 조선을 모티브로 한 K-판타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일단 조선을 배경으로 하니 역으로 좀 식은 면도 있고 우리보다 더 잘 알고 더 잘 접근하는 대기업, 인디가 많다는 것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도 다크 판타지 조선으로 만든다면 눈에 띄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고민 끝에 역으로 삼국시대가 오히려 유니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삼았다. 삼국 중에서 신라를 한 이유 역시 초점을 맞추기 좋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일본은 사무라이, 닌자가 있고 중국은 무협이라는 명확한 테마가 있지 않나. 캐릭터성을 살릴 수 있는 그런 요소인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은 그런 테마가 없어서 어떤 게 좋을까 하다가 발견한 게 바로 화랑이었다. 그런데 화랑으로 하자니 신라하면 화랑, 이런 느낌으로 너무 익숙한 느낌이더라. 그래서 여기서 한 번 꺾은 게 바로 원화였다.
Q. 고구려의 경우에는 개마무사가 있지 않나. 굳이 신라로 한 이유가 있었나.
=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소 낯선 소재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원화를 모티브로 하는데 배경이 고구려나 백제일 수도 없지 않나.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라를 선택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신라가 통일한 덕분인지 자료의 양 자체도 신라가 압도적이어서 개발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Q. '남모'의 현재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비주얼, 아트워크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내부적으로도 많이 신경 쓸 것 같은데.
= 맞다.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일상적인 세계와 영안으로 보는 영혼 세계, 그리고 영안으로 볼 때의 보스 디자인까지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대비를 어떻게 살리면 좋을지 내부적으로도 많이 신경 쓰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아트 팀원의 실력이 워낙 좋아서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내주고 있긴 한데 그걸 어디까지, 어떻게 게임 내에 녹여낼지가 고민이다.
Q. 하나의 스테이지, 보스를 만들면서 평소의 모습과 영혼 세계의 모습 2개를 만들어야 하니 작업량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어렵지는 않았나.
= 힘들다(웃음). 하지만 그렇다고 설렁설렁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디고 인디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임팩트 아닌가. 그래서 그 부분에 한해서는 내부적으로 절대 타협하지 말자고, 비주얼에 대해서는 힘들더라도 무조건 공을 들이자고 원만하게 합의했다.
Q. 영안의 경우 로드 오브 더 폴른의 움브랄 램프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영향을 받거나 한 부분이 있나.
=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영감을 받았다거나 한 건 아니다. 실제로 쓰임새 역시 다른 부분이 많다. 대표적으로 보스전을 들 수 있다. 로드 오브 더 폴른에서 나름 핵심으로 내세운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보스전에서 딱히 움브랄 램프를 쓰지 않던데 '남모'는 정반대로 보스전의 핵심 요소로 쓰인다.
Q. 그렇다는 건 비슷하긴 하지만, 딱히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는 건가.
= 그렇다. 오히려 초기 설정, 콘셉트가 변한 것에 가까운데 만화나 영화를 보면 맹인인데도 감각이 날카롭다든가 뭐 기의 파동을 느낀다거나 해서 사람의 움직임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느끼는 그런 캐릭터들이 있지 않나. 남모 역시 초창기에는 맹인이라는 콘셉트로 검은 화면에 뭔가 그런 흐름을 느낌으로써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고 적이 다가오는 걸 발자국으로 플레이어가 볼 수 있도록 했는데 정작 만들어보니 재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두 눈을 베인 남모가 기를 느낀다는 그 부분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이를 영적인 소재랑 엮어도 좋을 것 같아서 지금의 영안과 영혼 세계를 구현하게 됐다. 정리하자면 소 뒷걸음질 치다가 개구리를 잡은 셈이다.
근데 만들고보니 이게 또 제법 원화의 지도자였다는 설정과도 잘 어울리더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원화는 일종의 무당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영적인 거랑도 잘 맞아떨어졌다.
Q. '남모'의 플레이 타임은 어느 정도로 계획 중인가.
= 10시간에서 13시간 정도의 플레이 타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목표다. 이제 막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한 단계여서 바뀔 수도 있다. 핵심은 보스러시로 현재 완성된 보스는 5종 정도이며, 최종적으로는 13종의 보스를 구현할 생각이다.
Q. 이번 플레이엑스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것 같다. 참관객의 반응은 어떤가.
= 자체 설문을 했는데 아트랑 전투에 대해서는 대부분 호평해 주고 있다. 다만, 조작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부분은 우리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으로 급하게 출품하느라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도쿄게임쇼에도 출품해서 글로벌 게이머들에게 선보일 예정인데 그때는 좀 더 완성된 버전으로 찾아갈 생각이다.
Q.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보스를 하나만 선택한다면.
= 영상에 나오는 불상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다. 아무래도 불상, 부처라고 한다면 신성한 존재 아닌가. 그런데 그걸 다크 판타지라는 콘셉트에 맞게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웹진 인벤 윤홍만 기자
202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