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렐루게임즈 "AI 만능 아니야, 어떻게 활용할지가 핵심"

▲ 렐루게임즈 한규선 프로듀서

 

  • 주제: AI가 게임의 핵심 재미가 될 수 있을까? 렐루게임즈가 찾은 현재까지의 답
  • 강연자 : 한규선 - 렐루게임즈 / RELU GAMES
  • 발표분야 : 게임기획 - 인공지능
  • 권장 대상 : 딥러닝에 관심 있는 기획자, 디자이너, 프로듀서
  • 관심태그 : #딥러닝을 이용한 게임 디자인 #실패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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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연 주제] 딥러닝은 과연 게임의 '진짜 재미'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세션은 AI 기술을 게임에 적용해 본 현실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 그 자체가 아닌 '어떻게 하면 재미로 연결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합니다.


     

    크래프톤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인 렐루게임즈는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게임에 AI를 접목하는 시도를 하는 곳 중 하나다. 여타 게임사의 AI 활용 사례와 비교하면 렐루게임즈는 단연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가 단순히 게임 개발 과정에서 AI를 활용해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개발할지 고민하는 반면, 렐루게임즈는 게임의 핵심 시스템으로 AI를 활용해 전에 없던 게임을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이러한 시도가 항상 좋은 결과만 안겨줬던 건 아니다. 나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게임이 있는가 하면 혹평이 이어진 게임(프로젝트) 역시 적지 않다. 그럼에도 렐루게임즈가 계속해서 AI를 결합한 게임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이번 NDC 2025에서 렐루게임즈의 한규선 프로듀서는 AI와 게임의 결합을 위해 그간 렐루게임즈가 어떤 시도를 해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렐루게임즈가 찾은 해답이 뭔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 AI X 게임 - 렐루게임즈가 실패 속에서 찾은 해답은?


     

     

    렐루게임즈는 크래프톤의 딥러닝 게임 개발 조직 '스페셜 프로젝트2(SP2)'를 전신으로 하는 스튜디오다. 당시 SP2에는 두 가지 룰이 있었는데 '게임의 핵심 재미가 딥러닝으로부터 나올 것', '딥러닝이 없으면 안 되는 게임이어야 할 것'이었다. 현재는 크래프톤의 산하 스튜디오로 분사한 렐루게임즈지만, 이러한 핵심 가치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렐루게임즈가 가장 먼저 접근한 건 입력 도구를 변환시키는 거였다. 보통 게임을 한다고 하면 키보드/마우스(키마), 컨트롤러, 그리고 레이싱 게임을 할 때 휠을 쓰는 게 대부분이다. 한규선 프로듀서와 렐루게임즈는 이러한 입력 도구를 AI를 활용해서 바꾸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들이 주목했던 입력 도구는 바로 손이었다. 스마트폰에도 쓰이곤 하는 손가락, 제스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한 번의 제스처에 여러 의미를 담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스킬을 쓴다고 하면 그 스킬에 해당하는 버튼에 마우스를 갖다 대고 눌러서 행위를 실현한다. 이를 대체하는 요소로 한규선 프로듀서는 손가락으로 마법진을 그려서 주문을 발동하는 방식을 예시로 들었다. 복잡할 것도 없고 마법진을 AI가 학습하면 직관적인 재미를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 마법진을 그린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피로감이 심하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나름 획기적으로 보였던 이 프로젝트는 왜 실패했을까? 한규선 프로듀서는 해당 프로젝트를 검토하면서 쓴 기록을 보여주면서 이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유를 설명했다.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입력 방식에 대한 플레이어의 피로감 때문이었다. 짧게 반복적으로 마법진을 그리는 행위가 플레이어들의 피로를 유발했다. 여기에 더해 마법진을 제대로 그려야 하는데 여러 마법진을 외운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은 점도 있다. 플레이어에게 학습시키는 많은 코스트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에 한규선 프로듀서는 "나중에 이런 아이디어가 발전해서 마법천자문 같은 게임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학습 코스트가 많이 들어간다는 건 여전해서 결국 이 프로젝트는 드랍하게 됐다"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시도할 생각은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렐루게임즈가 다음으로 주목한 건 목소리였다. 음성 인식, 음성 분석을 잘만 활용하면 게임의 입력 장치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게임에서 명령을 내릴 때 여러 뎁스를 거칠 필요 없이 어디에 어떤 마법을 쓰라고 명령을 하면 되니까 간결하면서도 명확하리라 판단한 것이다.

     

    ▲ 손가락 다음으로 렐루게임즈는 음성에 주목했다

     

    이런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게 바로 '워케스트라(Warkestra)'다. 플레이어가 지휘관이 되어서 미니언에게 공격, 이동 등의 음성 명령을 내리는 게임이었는데, 이 게임 역시 빛을 보지는 못했다. 앞선 게임과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포스트모템을 위해 '워케스트라'의 PD가 남긴 기록을 본 한규선 프로듀서는 이 두 게임의 사례가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걸 발견했다. 음성 인식이라는 새로운 컨트롤러(조작법)에 대해 익숙하지 않기에 생소함을 느끼는 플레이어가 많았고 짧고 자주 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데에서 오는 피로감 역시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렐루게임즈가 생각하는 것보다 플레이어들은 키마 등 기존의 입력 도구에 너무나도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익숙하기에 여러 번의 뎁스를 거치더라도 기존의 방식이 더 편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키마로 되는데 굳이 제스쳐, 음성 인식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있다. 기존의 방식으로 할 수 있다면 굳이 새로운 입력 방식을 쓰는 플레이어는 대부분 없다는 의미다.

     

    이러한 경험을 바타으로 PD 중 한 명이 제안해서 나온 게 바로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마법소녀 루루핑)'이다. 음성 인식이 필수인 게임으로 지스타 2024에서 참관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던 게임이다.

     

    ▲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했던 '마법소녀 루루핑'

     

    '워케스트라'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임으로 프로토타이핑 당시에도 여러모로 호평이 이어졌다. '마법소녀 루루핑'이 프로토타이핑 당시부터 지스타 2024 현장에까지 호평이 이어진 이유는 단순하다. 음성 인식이라는 새로운 컨트롤러를 써야 한다는 피로감보다 도파민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규선 프로듀서는 "AI 기술을 활용해 주문을 외우는 목소리를 분석한다는 점과 더불어 주문 시전이라는 설정을 음성 인식으로 구현함으로써 누가 봐도 음성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까지, AI 기술과 콘셉트가 게임 디자인적으로도 잘 적용된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AI 기술을 게임에 접목하는 다음 사례로 한규선 프로듀서가 제시한 건 바로 대화에 대한 거였다. 대부분의 게임은 여러 지문 중 하나를 선택하는 선택지 형태로 NPC와 대화를 구현하곤 한다. 그렇다면 선택지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질문을 하거나 대화를 하도록 할 순 없는걸까. 운 좋게도 이 즈음 챗지피티가 등장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그 결과 나온 게 바로 렐루게임즈의 전신인 SP2 시절 만든 '위시톡'이라는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서 캐릭터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게임인데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왜 대화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 음성, 대화, AI를 접목한 추리 게임 '언커버 더 스모킹 건'

     

    그에 대한 해답으로 렐루게임즈가 내놓은 게 바로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다.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선택지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건 현장에는 수많은 증거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반쪽짜리일 뿐이다. 정해진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탐정으로 용의자들과 자유롭게 대화해 범인을 찾아야 한다.

     

    보통 이럴 때 대화의 주제는 크게 '사건에 관련이 있는 정보'와 '관련이 없는 정보' 2개로 나누어지기 마련이다. 먼저 관련 있는 정보는 개발자 입장에서 예측이 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개발자기 직접 사건과 증거를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증거들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한지, 플레이어들에게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질지 예측할 수 있다.

     

     

    문제는 관련 없는 정보다. 플레이어가 뭘 물어볼지 개발자가 예측할 수 없기에 대응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실제로 플레이어들이 한 질문들을 정리한 걸 보면 관련 없는 정보에 대한 건 서로 동떨어진 걸 볼 수 있는데 서로 관계성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질문에도 나름 그럴듯한 대답을 해야 플레이어가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데, 여기서 딥러닝이 장점이 발휘된다.

     

    딥러닝에는 'AI 할루시네이션(AI Hallucination)'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아마 챗지피티를 써본 사람이라면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다. 질문에 대한 터무니없는 대답을 그럴듯하게 하는 것으로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은 어떤 면에서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AI 할루시네이션을 이용해 사건과 관련 없는 정보로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들었다.

     

    ▲ AI 할루시네이션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느낌을 선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다면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렐루게임즈는 몇 개의 장치를 만들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여러 개의 LLM을 활용해 하나는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생성하고 다른 하나는 플레이어의 질문을 분석, 평가해서 사건과 관계성이 높은지 판별한 결과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태그를 걸어주는 식이다. 이를 통해 아주 낮은 확률로 제대로 질문을 했음에도 AI 할루시네이션으로 엉뚱한 질문이 나왔을 때 플레이어가 헤매지 않도록 도와준다.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은 게임을 하면서 왜 대화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렐루게임즈 나름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이다. 게임 디자인적으로는 플레이어를 탐정으로 설정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도록 했으며, 증거를 찾기 위해선 적절한 질문을 해야 하는 식으로 만들었다. AI 기술과 게임 디자인을 적절히 조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렐루게임즈의 다음 게임은? - 미메시스, 스캐빈저 톰


     

     

    렐루게임즈는 이제 단순히 말을 하고 대답하는 것에서 더 나아간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임으로 '미메시스'를 들 수 있다. '미메시스'는 AI 만약 사람처럼 행동한다면, 사람을 흉내 낸다면 어떨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게임이다.

     

    사람처럼 행동하고 속이는 미메시스가 우리 사이에 있다는 콘셉트로 개발된 이 게임에는 행동과 음성을 모방하는 AI가 들어있다. 미메시스는 평소에는 사람인 척 플레이어를 속이다가 빈틈을 발견하면 플레이어를 습격한다. 이를 통해 게임은 동료인지 적인지 알 수 없는, 의심되는 존재가 함께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느낌과 서로를 의심하게 하는 식으로 공포감을 선사한다.

     

     

    '스캐빈저 톰'은 오염된 지상을 탐색해서 자원을 모으고 다양한 도구를 제작해서 생존하는 크래프팅 생존 탐사 게임이다. 큐리오시티가 찍은 화성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지하 벙커에서 원격으로 로봇을 조종해야 한다. AI 이미지 생성 기술이 적용된 게임으로 무한한 공간을 탐험하는 경험을 선사하고자 하고 있다.

     

     


    ■ AI는 만능이 아니다 - "'재미'는 아직 사람이 찾아야"


     

     

    렐루게임즈는 현재 게임과는 별개로 AI를 기반으로 한 개발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도넛이라고 명명한 해당 플랫폼은 딥러닝을 기반으로 자연어(텍스트)를 입력하면 이를 기반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도넛을 소개하면서 한규선 프로듀서는 "딥러닝이 사람이 판단하는 것들을 대부분 할 수 있다면, 재미라는 것도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로 '재미있는 게임'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게 된다면 AI가 언젠가는 알아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많은 기대를 내비쳤다.

     

    그간 렐루게임즈가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미래에 대한 얘기를 끝마친 한규선 프로듀서는 AI에 대한 오해에 대해 그의 견해를 밝혔다. 일반적으로 AI에 대해 만능이거나 만능이어야 한다는 오해를 한다. 그는 AI를 제대로 쓰기 위해선 우선 그러한 강박을 버리라고 조언했다. AI 할루네이션 사례처럼 AI라고 해서 항상 완벽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히 AI가 재미를 발견하는 건 더 어려운 일로 아직은 게임 디자이너가 해야 할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한규선 프로듀서는 "AI는 수단이어야지 그게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을 만들 때는 지금보다 AI가 더 안 좋았지만, 안 되는 부분을 빨리 파악해 그걸 오히려 게임에 역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썼다. 그런 측면에서 본자면 AI를 게임에 접목시킬 때는 '기대치 관리'와 함께 게임 디자인 쪽에서 유연성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선 책을 읽어야 하는 것처럼, 좋은 AI를 활용하기 위해서 마찬가지로 책을 읽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면서 강연을 마무리했다.

     

    웹진 인벤 윤홍만 기자
    202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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