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게임'은 상당한 전통을 지닌 개념이다. '병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승리에 이를 수 있는가?'는 먼 옛날부터 모든 전략가들의 궁극적인 목표였으니, 전쟁이 밥 먹듯 일어난 시절에 얼마나 많은 모의전이 이뤄졌을지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미드웨이 해전 직전에 이뤄진 워게임에서 이길 때 까지 주사위를 굴리며 정신승리하던 만화 '몽환의 군함 야마토' 속 일본군처럼, 실제 군 사령부에서도 워게임은 숱하게 벌어지는 일이고, 지금도 어느 사령부에서는 행해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워게임'을 상업적으로 발전시킨 결과물들이 여러 보드 게임, 그리고 비디오 게임의 시대에 이르러 '전략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로 발전한 작품들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며 이 중 대부분은 '게임'에 초점을 맞춰 저마다의 길을 가 버렸지만, 몇몇 게임들은 군사 연습 과정으로 활용되었던 '워게임'의 진수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작인 'WARNO'까지 이어진 프랑스 개발사 유진의 워게임 시리즈, 그보다 이전에 큰 인기를 끌었던 매시브의 '월드 인 컨플릭트', 그리고 오늘 소개할 '스틸 발랄라이카 게임즈'의 '브로큰 애로우'가 그렇다.
게임명: 브로큰 애로우
장르명: 전략 시뮬레이션
출시일: 2025. 6. 20
리뷰판: 1.0.7
개발사: Steel Balalaika
서비스: Slitherine Ltd.
플랫폼: PC
플레이: PC
우리가 생각하는 그 '전략시뮬레이션' 말고
말 그대로의 '전략' 시뮬레이션
스타크래프트의 범국적 흥행 이후, 대한민국에서 '전략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는 조금 독특한 인식을 지니게 되었다. 기본적으로는 전략, 전술이 필요한 게임 장르이지만, 결국 승부는 피지컬에 의해 갈리는 장르. 대부분의 빌드와 전략들이 '기본기'가 되어버리다 보니, 정작 승부는 전략의 특출함보다 최적화와 손 빠르기에 의해 갈려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브로큰 애로우'는 다르다. 사거리 13짜리 귀여운 시즈탱크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클릭에 즉각적으로 반응해 허리를 돌리는 해병들이 나오지도 않는다. 브로큰 애로우의 배경은 근미래의 발트 해고, 등장 세력은 우주 경찰 미군을 위시한 NATO 연합군, 그리고 현실에서는 약간 거품이 빠졌지만, 게임 속에서는 여전히 강대한 러시아군이다.
그리고, 배경 만큼이나, 장비와 등장 병과도 현실을 따른다. 그냥 보병의 전투 소총 유효 사정거리가 600미터에 이르고, 전차포는 2-4키로미터, 곡사포는 그보다도 훨씬 길다(그렇지만 현실보다는 짧다). 보병이 뛰어서 한 바퀴 돌려면 족히 한 시간은 걸릴 거대한 전역이 배경이고, 지상뿐만 아니라 고도가 나뉜 공중마저 전장이다. 당연히, 우리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전략 시뮬레이션과는 모든 부분에서 다르다.
모든 전투에 앞서 진행해야 하는 '정찰'부터 무척 중요하다. 브로큰 애로우의 전투는 사실상 정찰부터 시작되는데, 초반부터 정찰 보병을 침투시키려는 시도와 이를 막기 위해 드론을 배치하는 과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며, 시야 싸움에서 밀려 버리면 곧 포탄 찜질로 이어진다. 상대가 방공망까지 촘촘히 깔아놨다면, 게임은 더 어려워진다.
반대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영역은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다. 시야 우위와 포격을 통한 정석적인 힘싸움을 노린다면 언제든 뒤에서 적 공수부대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하며, 레이더를 잘 활용해 공수부대의 투입 자체를 예방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먼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전쟁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꼽히는 '보급'의 중요성 또한 굉장히 높다. 대부분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은 '보급'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축소되어 있지만, 브로큰 애로우의 전투는 원활한 보급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보병이 발사하는 탄약 한 발, 전차의 포탄이나 미사일 등 모든 소모재가 보급품을 통해 충전되며, 고장난 차량의 수리나 부상 병력의 치료도 보급을 통해 이뤄진다. 당연히 보급품을 불러도,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므로 전투가 시작된 이후엔 늦다. 정찰을 통해 적 병력 배치를 파악하고, 요충지나 격전이 예상되는 지역에 미리 보급품을 가져다 놓아야 승리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정리하면, '브로큰 애로우'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략시뮬레이션'이라는 단어 이상의, 단어 그대로의 '전략'이 필요한 게임이다. 토탈워 시리즈나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 등도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 깊이와 중요도가 다르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플레이어는 승부의 변수를 피지컬로 막아낼 수 있다. 다수의 저 체력 병력들을 상대하라고 대놓고 만들어진 '럴커'도 손만 잘 쓰면 해병으로 잡아내는게 스타크래프트다. 토탈워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는 변수를 막아낼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여럿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브로큰 애로우'는 애초에 '변수를 최대한 배제하는 것'을 전제로 전투가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을 적이 파고 들어온다면 게임이 어려워지고, 변수에 대응할 방안들을 미리 마련해 둔 상황이라면 승리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 식이다.
'덱', 그리고 '커스터마이징'
브로큰 애로우의 전장은 넓고도 깊다
'브로큰 애로우'의 승패는 섬멸전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별개의 병영이나 건물이 존재하지 않고, 파견된 군사들로 진행되는 전투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전투의 룰을 설명하면, 모든 진영이 같은 군비를 지니고 전장에 나서게 된다. 군비는 게임 내내 지속적으로 충원되며, 전개된 병력이 많을 수록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전투는 사전에 플레이어가 만들어 둔 '덱'을 통해 이뤄진다. 이렇게 전투가 진행되면서, 요충지나 거점을 더 오랜 시간 점령한 측이 승리하는 형태다.
'덱'은 전투에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의 총량이다. 정해진 군비 내에서 덱을 짤 수 있으며, 덱에 없거나, 그 이상의 수를 전장에 전개할 수는 없다. 덱은 진영마다 다섯 개의 병종 중 둘을 선택해 구성하도록 이뤄져 있으며, 각 병종에 따라 몇몇 유닛은 제한되거나, 사용할 수 없거나, 혹은 강화된다.
예를 들어 미군 진영의 기본 병종인 '해병대'의 경우 대부분의 유닛을 덱에 기용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특출난 부분은 없다. 반면 '기갑여단'은 굉장히 강력한 화력을 바탕으로 돌파전을 펼칠 수 있지만 헬기 및 공중 자산이 전무하며, '특수작전부대'는 은엄폐 중심의 저시인성 정예 병력을 동원해 정찰 및 첩보전에서 활약할 수 있지만, 기갑 및 차량 전력이 전무하다. 러시아군 또한 마찬가지로 병종에 따라 덱의 구성이 크게 달라진다.
결과적으로, 내가 어떤 병종의 덱을 기용하느냐, 그리고 아군과 적이 어떤 덱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장의 판도는 크게 달라지며, 전장의 형상 또한 덱의 선택 과정에 큰 영향을 준다. 엄폐물이나 시가지의 유무, 적 기갑 및 항공 전력의 대략적인 수준, 적과 아군 정찰 자원의 규모 등, 모든 것들이 전장의 그림을 채우는 물감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 깊이를 더하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커스터마이징'이다.
'브로큰 애로우'는 모든 병종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 보병의 개인화기를 설정할 수 있고, 전투기나 폭격기의 무장을 교체할 수 있으며, 전차나 자주포의 포신과 방어 체계를 조정할 수도 있다. 미군 기계화보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M2브래들리 장갑차를 예로 들면, 포탑 모듈 교체는 물론, 단거리 방공체계나 토우 미사일을 장착할 수도 있다. 자주포인 'M109 팔라딘'도 구경이나 구경장을 교체해 레이저 유도 기능을 갖춘 '아이언 썬더'까지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다. 물론, 무장 외에도 위장색이나 도색도 교체할 수 있다.
이 모든 무장이, 저마다의 '사양'을 갖추고 있다. 개인 화기는 종류에 따라 피해량, 유효 사거리, 명중률, 관통력이 모두 다르며, 전차포도 탄종에 따라 장갑 관통력이나 유효 사거리, 폭발 반경, 분산도 등이 달라진다. 방어 스펙 또한 마찬가지로, 전면과 측면에 따른 장갑 두께가 다른 건 기본이며, 능동방어체계를 갖췄는지, 몇 발의 연막탄을 휴대하는지, 항공 전력의 경우 채프(미끼)의 휴대량이 얼마냐 되는지에 따라 생존력이 큰 차이를 보인다.
때문에, 덱을 짜는 과정에서 '커스터마이즈'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병종 단위에서 구분되는 기본적인 컨셉 이상의, 기묘한 나만의 전략과 전투 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말 그대로 무한에 가까운 전략과 전술이, 내 손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기갑 위주의 적을 상대하면서 정석인 헬리콥터 대신 대전차 무장으로 떡칠한 보병대를 투입할 수도 있고, 대물 저격총을 휴대한 저격 분대로 시야 밖에서 방공망을 박살낼 수도 있다.
당연히, 이 모든 것들이 전장이 '깊이'가 된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의외의 전술'은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생소한 적의 전술에 당하면, 이를 어떻게 파훼할지를 깊게 고민하게 된다. 전투 시간 만큼이나 긴 시간을 덱 구성에 소모하는 건 흔한 일이다. 어떤 병종을 어떤 형태로 기용하고, 이를 또 어떠한 전장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이르기까지, '브로큰 애로우'의 전장은 깊고도 깊다.
밀리터리를 몰라...?
'삑-' 당신은 부적격자입니다
이쯤 되면 다들 이해하겠지만, '브로큰 애로우'는 결코 모두를 위한 게임은 아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들 군대를 다녀 오기 마련이니 조금은 더 낫겠지만, 단순히 군대를 다녀 왔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알기 어려운 수많은 군 용어와 고유명사가 난무하는 게임이 '브로큰 애로우'다.
탑 어택 미사일이 뭐고, 암람은 또 뭔지, 분대지원화기와 전투소총, 지정사수소총은 뭐가 다르고, 5.56mm와 7.62mm의 차이는 또 무엇인지, 구경과 구경장은 뭘 의미하는 것이고, CQB, LAW, TOW같은 세 글자 영단어는 무엇이며, 수많은 항공기들은 또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잘 모른다. 군대를 다녀 왔어도, 본인이 경험한 병과가 아니면 잘 모르는 게 일반적이다. 이른바 '밀덕'으로 구분되는 밀리터리 매니아들이야 그냥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사항들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지식의 격차'는 게임에 익숙해지는 속도와도 직결된다. 사전 지식의 유무는 대부분의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큰 격차를 만들어내지만, '브로큰 애로우'는 그 중에서도 더 심한 편에 속한다. 정신 없는 전장 상황에 대응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즉각적으로 알아야 하는데,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스타크래프트를 예로 들면,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적 빌드만 흘겨보아도 무엇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즉각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다크 템플러가 예상되면 벌쳐를 준비하고, 정석적인 질드라+템플러면 메카닉 위주로 베슬을 대동해주면 된다. 하지만 '브로큰 애로우'는 이 '생각의 고리'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브로큰 애로우'라는 게임이 단순히 안다 해서 쉬워지는 게임도 아니라는 거다. 거대한 전장을 다루는데다, 유닛의 크기 보정 따위 없이 현실적인 비주얼을 지향하는 게임인 만큼, 전투 과정에서 유닛들의 크기는 슬쩍 봐서는 알기 어려울 정도로 작다. 게다가 유닛들의 움직임도 해병 허리 돌리듯 빠릿빠릿하지 않으며, 대단위 전투를 지원하는 시뮬레이션 치고는 물품 하역이나 복귀 등 미세한 부분까지 컨트롤을 해 주어야 하는 게임이다 보니 전장이 고도화될수록 손이 꽤 바빠진다.
정리하면, '브로큰 애로우'는 '밀덕'이 아닐 경우 엄청난 진입 장벽을, 설령 '밀덕'이라 해도 무시 못 할 허들을 지닌 게임이다. 치밀한 작전 끝에 승리를 거두는 카타르시스는 굉장하지만, 그 과정에 이르는 길이 쉽지 않다.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최하 난이도의 캠페인 첫 미션도 쉽지 않게 다가올 정도다.
여기에, 한시적인 문제일 수 있지만 불안정한 서버 상태와 크래시도 발목을 잡는다. 끝까지 플레이하는 경우가 드물 정도로 멀티 플레이 서버는 말랑말랑하며, 그 와중 치트나 핵을 사용하는 유저들도 빈번히 목격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크래시나 서버 접속이 끊기면 메뉴로 돌아가지지 않아 게임을 아예 꺼야 다시 플레이가 가능한데, 이 또한 게임 경험을 해치는 부분이다.
정리하면, '브로큰 애로우'는 보병 간의 사격전부터 핵탄두 투하까지, 현대전에서 가능한 대부분의 전황을 체험할 수 있는, 깊이 있고 완성도 높은 워게임 시뮬레이터다. 다만, 현실성을 중시한 게임 특성 상 너무나 빈번하게 쏟아지는 군사 용어와 게임 자체의 허들이 무척 높기에 모두를 위한 게임은 결코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분야의 팬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완성도와 출시 초기임에도 나름 잘 잡힌 밸런스, 무엇보다 '재미'를 갖추고 있기에, 워게임에 관심이 있는 게이머라면 서버 상태가 좋아질 즈음엔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추천할 만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커스터마이징을 통한 깊이 있는 병과 구성
사실성과 보는 재미를 모두 갖춘 전투 연출
넉넉한 분량의 캠페인과 멀티플레이, 협동
그 중 멀티플레이와 협동은 서버가 말썽
사전 지식 없이는 엄두가 안 나는 허들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인터페이스
웹진 인벤 정재훈 기자
2025-06-25